전북 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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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골제 이야기

    벽골제는 자연에만 의지해 왔던 농업용수를 저장
    물이 부족할 때 사용했던 조상의 지혜와 슬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수리시설

    전북 김제시 부량면 용성리에 위치하고 있는 벽골제는 사적 제111호로 지정되어있다.
    김제 벽골제는 한국 최고,최대의 저수지 둑으로 <삼국사기>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1천 6백여 년 전인 330년(백제 비류왕 27)에 쌓았고, 790년(원성왕 6)에 중축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후 고려,조선 시대에 수리하였다.
    제방은 포교리(浦橋里)를 기점으로 월승리(月昇里)까지 남북으로 일직선을 이루어 약 3km의 거리에 남아 있는데, 수문지임을 알려주는 거대한 석주(石柱)가 3군데에 1쌍씩 있다. 그리고 1925년 간선수로로 이용하기 위한 공사에서 원형이 크게 손상되었으며, 제방은 절단되어 양분(兩分)된 중앙을 수로로 만들어 농업용수를 흐르게 하였다

    벽골제

    벽골제

    자연에만 의지해 왔던 농업용수를 저장, 물이 부족할 때 사용했던 조상의 지혜와 슬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수리시설로 벽골제수리민족유물전시관, 단야각, 우도농악관, 벽천미술관, 조정래 아리랑문학관,벽골제수문,벽골제 테마공원 등이 있으며, 매년 지평선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 벽골제는 축조 당시 둑의 길이가 6천8백 척에 이르렀던 것으로 [동국여지승람]에 밝혀져 있어 그 규모를 짐작케 하고 있으며,1975년 발굴조사에 따르면, 제방 높이는 북단(北端)이 4.3m, 남단(南端)이 3.3m이고, 수문 구조는 높이 5.5m의 2개 석주를 4.2m 간격으로 세웠으며, 서로 마주보는 안쪽 면에 너비 20cm, 깊이 12cm 요구(凹溝)를 만들고 목제(木製) 둑판을 삽입하여 수량을 조절하였다. 석축(石築)은 약 6m이며 가장 낮은 곳이 1.1m이다.

    또 현재 벽골제 옆에 있는 '신털미산'이 이곳 대역사에 동원된 인부들의 짚신에 묻은 흙과 짚신이 모여 이루어졌다는 전설이 있어 신비감을 더 해 주고 있다. 또한 벽골제는 우리 나라 제일의 곡창인 호남평야의 핵심부에 위치,갈수기에는 이곳 김제평야 일대의 해갈에 큰 몫을 해 온 것으로 보인다.